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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

대보름과 쥐불놀이

새로운관심 2021. 2. 27. 06:55

 

올해는 설날에 가족들이 모이지 않고 그냥 지나가서 설날이 지났는지 생각을 하지 못하고 있었다. 왜냐면 그래도 설날이면 왁자지껄 모여서 지나온 이야기를 하면서 설음식을 나눠야 설을 쉬었다는 느낌이 들었다. 코로나가 전통을 망각케하는 마력을 지녔나보다.

 

그런데 갑자기 집사람이 보름나물을 산다니기에 설도 안지났는데 무슨 나물이냐고 핀잔을 주었다. 그런말을 던지고 달력을 보니 어김없이 설날은 지났고 대보르이라고 진하게 활자되어있었다. 그제서야 지난 며칠이 주마등처럼 지나갔다. 이렇게 모든걸 까맣게 잊고 지내기도 쉬운게 아는데, 까딱했으면 무심히 넘어갈뻔했다.

 

어릴때 대보름에는 오곡밥과 한해동안 정성스레 채취하여 말려놓은 갖은 나물들을 가지고 새벽같이 음식을 장만하여 방 윗목에 상을 차리고 대보름을 맞이했다.

어릴때 제일 맛있게 느껴 진것은 명태와 무우를 넣고 조림한 것이었다. 뭐든 귀한 시절이라 나물보다는 그래도 고기나 생선을 먹는게 입이 즐겁고 행복한 그때였다.

저녁에 차려준 나물들을 보고 있자니 어릴때의 기억이 새록새록 떠올랐다.

 

아침을 먹고는 동네방네 다니면서 누구야 내 더위 사가라 하면서 오지도 않은 무더위를 벗어나려고 저마다 안간힘을 쓰며 부르짖었다. 대보름에 마련한 오곡밥은 양도 푸짐하여 며칠동안 먹기도 했다. 오곡밥은 찹쌀도 넣어서 찰밥이라고 부르기도 했다. 찰밥은 식으면 식은대로 먹는 방식이 있었다. 그때에는 냉장고도 없었고 보온밥통이나 전기밥솥도 없었다. 찰밥을 하면 남은것은 대나무 소쿠리에 담아 보자기를 씌워서 시원한 광에 두고서 조금씩 조금씩 떠 먹었다. 특히 식은 찰밥은 볶은콩가루에 뭍혀서 먹으면 콩가루의 고소함이 입안에 퍼지는 풍미를 느낄 수 있었다.

그런 찰밥을 떠올리며 오곡밥을 먹을때 씨익 미소가 배어 나왔다.

 

든든이 아침을 먹고 학교에 가서는 가져온 밤, 호도, 땅콩 등을 나눠 나누며 부럼을 깬다며 온 교실이 난장판이 되어 시끌벅절 하여 담임 선생님께 혼났던 기억이 새록새록 정겹게 다가온다. 대보름날 저녁에는 보름달을 보면 소원을 빌기도 했다. 지구와 달이 가까와서 인지 가장 크게 느껴지는 보름달을 볼때는 신비스럽과 영험스스러운 기운을 느끼는 것 같았다. 어린 마음에 정말로 토끼와 계수나무가 있는지 눈이 빠지도록 바라보기도 했었다. 얼룩덜룩한 달표면을 볼때에는 정말로 토끼가 있지 않을까 하는 착각이 들기도 했다.

대보름의 백미는 뭐니뭐니 해도 쥐불놀이였다. 쥐불놀이는 며칠전부터 산에가서 관솔을 준비했다. 관솔은 소나무 가지가 베어져 나간 자리에 송진이 나와서 굳어진 것을 말한다. 송진은 휘발성이 있어서 인지 불이 잘 붙어서 쥐불놀이의 연료도는 최고였다. 깡통에 못으로 촘촘이 구멍을 내고 철사로 끈을 달아서 만든다.

 

여기에다 미리 채취해온 관솔을 넣고 불쏘시게로 불을 붙인 관솔 하나를 넣고 철사줄을 잡고 팔로 빙빙 돌리면 뚫어진 못구멍으로 공기가 바람처럼 들어가서 불쏘시게의 불이 주변의 관솔들에 엉켜붙어서 돌리는 깡통에서 불이 활활 타 올랐다. 이런 쥐불놀이를 할 때에는 윙윙 소리가 나며 상대편의 쥐불 깡통이 돌아가는 모습은 마치 도깨비 불 같았다. 아직은 농사를 짓기 전이라 빈 논에서 쥐불놀이를 하는데, 가끔씩 쌓아놓은 볏짚단에 불이 붙어서 홀라당 태워먹은 기억이 난다. 그러면 으레이 다음날 논 주인 어른한테 호되게 꾸지람을 듣기도 했다.

 

쥐불놀이를 하다가 거의 막바지에 이르면 윙윙 돌리던 깡통의 철사줄을 하늘이 향할때 순간적으로 놓으면 높이 날아간다. 그 불꽃이 날아가는 모습은 밤하늘에 새로운 별들이 쏟아올라지는 것 같았다. 올라가다 지친 깡통이 맥없이 떨어질때에는 깡통에 엉성하게 남은 관솔 불꽃들이 재각각 미리 튕겨나와 별똥별 같은 착각이 들 정도였다.

 

정월 대보름날의 음식을 먹으면서 지나온 추억을 소환해 낼 수 있는 시간이 되어서 더욱 기쁘다. 지나고 나면 소중히 기억될 우리의 것도 참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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