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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

벚꽃 라이딩

새로운관심 2020. 4. 12. 00:28

토요일이 기다려지는 계절이다. 토요일에는 어김없이 찾아오는 라이딩의 중독성 있는 즐거움이 있다.

 https://m.facebook.com/story.php?story_fbid=3138156829576931&id=100001479340072

 

 

#잠실철교 #남단에서 일행이 합류하였다. 2주전의 #신시모도 #라이딩때와는 다르게 여유가 있다. 날씨가 풀리고, 장거리 일정이 아닌지라 자연스레 느낌이 오는 것이다. 오늘 코스는 #암사3단고개 2회 왕복후 #암사대교를 건너서 #워커힐을 둘러보고 #장로신학대를 거쳐서 마무리하는 것이었다.

 

 

내가 제일 싫어하는게 오르막이다. 오르막을 만나면 갑자기 페달링이 멈춰진다. 무의식적인 반응은 몸이 알고 일으키는 무조건반사로 내몸이 오르막을 받아들이는 것을 극히 거부하는게 아닐까 생각한다.

 

 

 

 

3단고개를 2회 왕복하고 내려오는 길에 정자가 보였다. 피로한 근육도 쉴겸 그리로 페달링을 해서 갔다.

 

 

구암정은, 1669년(현종 10)에 건립된 구암서원(龜岩書院)이 있었던 자리에 세워진 정자이다. 경기도 광주 사림(士林)들에 의해서 세워졌으며 광주 출신의 사림 6현이라고 불리는 이집(李集), 이양중(李養中), 오윤겸(吳允謙), 임숙영(任叔英), 정엽(鄭曄), 정성근(鄭誠謹)을 모셨다고 전해진다. 숙종 때에 사액되었다가 흥선대원군 때 훼철되었고 이후 예전 서원을 기념하기 위해 1998년에 서울특별시 취수장이 건립되면서 정자를 세웠고 구암정(龜岩亭)이라고 이름지었다. 또한 이곳은 백제시대 불교 사찰인 백중사가 있었던 자리였다고 알려져 있다. 출처 [네이버 지식백과] 구암정 [龜岩亭] (두산백과)

정리하면, 구암정은 백제때 세워진 백중사라는 절터에, 조선시대에 서원을 세웠으며 대원군때 철폐되었으며, 98년에 서울시에서 정자를 세우면서 '구암정'으로 명명했다는 것이다.

 

 

언덕배기 오르는 것을 너무 무리했는지 다리가 무지 후덜거렸다. 하지만 그만큼 강한 훈련을 통해서 건강해지는 효과를 볼 것이라고 기대한다.

 

 

구암정에 대한 설명이 담긴 팻말이 우뚝 서 있다.

 

 

어느 집안의 것이라는 비도 세워져 있다. 유교를 숭상하는 내력에서 유래되는 가문, 핏줄을 중시하는 문화의 소산이라고 생각이 든다.

 

 

이제는 암사대교다. 암사대교도 독립된 자전거 길이 있어서 쉬지 않고 달릴 수 있는 매력적인 곳이다. 하지만 순간순간의 풍광을 놓칠 수 없는 우리로서는 다리 중간에서 인증샷을 하기로 했다.

 

 

도로 중앙에는 아침부터 차들이 쌩쌩 달리면서 경제를 일으키려는 노력이 대견해 보인다.

 

 

넓직한 다리 한가운데서 쉬어가면서 사진도 찍고 주변을 감상해 본다.

 

 

저 멀리 흐릿하게 보이는 롯데타워는 우리의 좌표를 알려주는 듯하다.

 

 

한강이 참 맑고 깨긋하다는 생각이 든다. 광진교 상류쪽으로 첫번째가 최근에 지어진 암사대교인데, 광진교와의 직선거리라 3.1키로미터나 되는, 한강의 다리 사이의 간격이 가장 긴곳 중 하나이다. 그만큼 그 사이에도 충분히 대교가 설립될 수 있는 여지가 있다고 봐야 한다. 그만큼 이쪽에 발전의 여지가 있다고 봐야한다. 강동과 광장동쯤에 하나가 생기면 적당하지 않을까 생각한다.

 

 

암사대교를 지나서, 길따라 페달을 밟아서 워커힐로 접어 들었다. 꽃길은 화려한데 봄은 저혼자 왔나보다. 상춘객이 없는 이 봄은 지혼자 핀 벚꽃들이 사람들의 발길을 기다리다 지쳐 지혼자 지고마는 듯하다.

 

 

그나마 우리라도 찾아가니 애써 반가워 하며 마지막 남은 혼을 다해서 꽃잎의 에너지를 발산하고 있다.

 

 

마치도 한겨울에 수북이 쌓인 눈으로 뒤덮힌 나무와도 같았다. 벚꽃잎들의 향연은 묘한 감흥을 자아내게 한다.

 

 

이제는 워커힐에 딸린 명월관으로 들어가 본다. 아직은 영업 시작전이라 너무나 고요하여 더 정겹다.

 

 

저기 언덕 아래로 내려다 보이는 한강은 우리가 왔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유유히 흐르고 있으며, 코앞에 보이는 라일락은 특유의 매력적인 향을 발산하여, 벚꽃에 중독된 눈보다는 아직은 여백이 있는 후각을 자극하여 4월이 왔음을 알려준다.

 

 

이런 야외 테이블에 앉아서 한가한 시간을 사냥하는 것도 운치가 있어보인다.

 

 

비단장사 왕서방이 얼마나 돈을 퍼 날랐기에 명월이는 이렇게 번듯하고 큰 건물을 지었는지 놀라울 따름이다.

 

 

#명월관을 나와서, #장로신학대학교로 페달링을 했다. 왠지 경건히 져야 하는 느낌이 든다.

 

 

1890년대 평양에 정착하여 우리나라에 기독교를 전파하신 마포삼열(사무엘 어스틴 마펫)의 흉상이 있었다. 흉상 뒤로는 부부의 묘소가 경건하게 안치되어 있다. 대한민국 기독교의 모태라고 해야하나. 이분같은 훌륭한 분들 덕분에 우리나라가 성자하고 발전해 나가는 원동력이 되지 않았나 생각해본다. 영혼의 자양분이시다.

 

 

칼뱅은 1509년에 태어나서 1564년에 사망했다. 프랑스에서 태어난 신학자이다.

개신교의 장로교회를 창설한 프랑스 출신의 종교개혁가이자 신학자이다. 프로테스탄트 교회의 개혁자로서 개혁주의 신앙과 신학을 수립하였으며 칼뱅주의를 이룩한 인물이기도 하다. 파리에서 신학을 공부한 후에는 법학을 공부하였으며, 인문주의자로도 그 재능을 인정받았다. 1533년에는 강연 초고 작성에 에라스뮈스와 루터인용했다는 이유로 이단으로 몰려 은신하였는데, 이를 계기로 초기 교회로의 회복을 꿈꾸며 로마 가톨릭 교회를 떠나게 되었다. 그는 복음주의적인 프로테스탄트교를 확립하였고, 이단의 박해를 피해 스위스에 머무는 동안 그의 대표작 <기독교 강요(綱要)>를 저술하였다. 이 책은 박해받는 프랑스 프로테스탄트주의를 보호하기 위해 저술되었으며 복음주의의 고전으로 일컬어진다. 또한, 그는 제네바의 종교개혁 운동에도 참여하였는데, 철저한 신권 정치를 지향했기 때문에 추방당하여 프랑스로 돌아갔다. 그 후 개혁 교회의 목회자로서 신학교에서 강의를 하며 지내다가 제네바에 다시 초빙되어 인문주의자들의 영향 아래에 있었던 그곳의 교회 제도를 정비하였고, 이를 바탕으로 다시 한 번 엄격한 신권 정치를 시도하여 실행에 옮겼다. 출처 [네이버 지식백과] 칼뱅 [Calvin, Jean] (Basic 고교생을 위한 윤리 용어사전, 2001. 12. 20., 강동효)

 

 

감히 흉상 앞에 설 수 없어서 비켜서서 한컷 인증샷을 남겼다.

 

 

따스한 햇볕을 받아 어디 보다도 이르게 피어난 철쭉앞에서 인증샷을 하고 장신대를 돌아서 나왔다.

 

 

오늘 하루의 여정은 한번 안가본 길을 가본 그런 기분이다. 새롭고 인상깊고 다음의 라이딩이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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