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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버해협을 건너다.
대영박물관을 관람하고 다음 여정은 프랑스로 건너갔다. 예전에는 비행기나 배로 건너갔지만 지금은 기차로 간다. 영국과 프랑스를 잇는 기차 바로 유로스타를 타고간다. 도버해협은 영국과 프랑스 사이에 있는 해협이다. 넓이는 32키로나 된다. 도버라는 이름은 켈트어로 수로라는 뜻에서 나왔단다. 프랑스에서는 칼레 해협이라고 한다. 이 해협을 사이에 두고 영국의 도버와 프랑스의 칼레가 마주보고 있다. 이는 영국과 유럽을 연결하는 최단 거리의 항로이다. 지금은 해저 터널을 뚫어 철길로 연결했다. 유로스타는 유럽을 대표하는 고속열차이다. 1994년에 5월에 준공되었고, 11월에 첫 운행되었다. 2011년 부터 영국, 프랑스, 벨기에 3개국 단일 합작회사를 설립하여 운영한다. 영국 런던 세인트 판크라스 역에서 프랑스 파리 북역, 벨기에 브뤼셀 남역 및 네덜란드 암스테르담 중앙역 구간을 운행한다. 향후에는 독일 프랑크푸르트, 쾰른, 프랑스 리영, 스위스 제네바 등으로 확대할 예정이란다. 런던에서 파리까지는 1시간 간격으로 운행한다. 브뤼셀까지는 1시간 30분 간격으로 운행한다.
대영박물관에서 런던의 세인트 판크라스역으로 갔다. 가는길에 많이 막혔다. 그도 그럴것이 런던이 원래 교통체증이 심한데다 오후 시간이니 당연하다. 역사는 고풍스럽고 웅장하게 떡 버티고 서서 우리를 맞이했다. 우리나라의 기차역과는 사뭇다른 광경에 적잖은 위압감을 느꼈다. 친절한 가이드의 설명을 듣고 기차를 탈 준비를 했다. 국제적인 역사인 만큼 오가는 사람들도 그냥 얼굴만 봐도 다양한 나라의 사람들임을 알 수 있었다. 그러니 역사는 북적대고 활기가 넘쳤다.
런던에서 파리까지는 2시간 30분동안 논스톱으로 간다. 런던은 한국시간 기준 8시간 느리다. 물론 현재 유럽에 섬머타임이 적용돼서 그렇다. 영국을 제외한 유럽대륙은 한국보다 7시간 늦다고 한다. 여행 캐리어는 실내로 가져가지 않고, 열차와 열차사이의 공간에 앵글식으로 비치된 선반에 캐리어를 차곡차곡 쌓았다. 그리고 중요품과 휴대 가방만 우리와 같이 객실로 들어갔다. 우리 좌석은 역방향이었다. 그리고 마주보는 좌석이었다. 그러니 다리가 매우 불편할 것 같다는 느낌이 들었다. 뭐 할 수 없지 하고 있었다. 그런데 이게 웬일인가? 기차가 출발했는데도 우리 맞은편에는 아무도 앉질 않았다. 이 기차는 논스톱으로 파리까지 가니 더이상 탈 사람은 없다. 그럼 잘됐다. 그래서 아들과 나는 맞은편 순방향으로 자리를 고쳐 앉았다. 그리고 맞은편 자리에는 휴대용 가방을 맡겼다. 또한 다리도 쭈욱 뻗고 갈 수 있었다. 한결 편하고 좋았다.
저녁도 김밥으로 해결하였고, 좌석도 넓게 편하게 갈 수 있으니 최고였다. 그리고 해저터널을 통과한다니 기분이 묘했다. 시간이 야간이라 기차가 출발할때는 주변이 캄캄해 오고 있었다. 아들은 기차가 바다 터널속으로 들어가는 것을 직접 목격하고 싶다고 했다. 또 그 광경을 볼 수 있음에 흥분해 있었다. 하지만 기차에서 바다를 볼 수 있는 것도 아니고, 우리나라 지하철 처럼 그냥 캄캄한 터널 속이라고 얘기했다. 그랬더니 저으기 실망을 하는 눈빛이었다. 그래도 나라와 나라를 해저터널로 잇는 유로스타를 탔다는 흥분은 좀처럼 가라앉지 않는 눈치였다. 왜 안그럴까? 나도 이렇게 흥분되는데 말이다.
기차는 우리의 흥분되고 설레이는 마음을 싣고 도보해협을 건너 파리 북역에 입성했다. 시간을 보니 10시 반이었다. 영국 시간으로는 9시 반이겠지만, 파리가 한시간 빨라서 3시간 반이 흘러간 기분이었다. 캄캄한 밤이니 파리의 공기는 가늠할 수가 없었다. 역대합실에서 내린 사람들이 대부분 사라지자 조용해 진다. 가이드가 잠시 기다리라고 하면서 우리를 델고 갈 버스가 어딨는지 확인하고 오겠다고 한다. 10여분 후에 다시 돌아왔다. 그러면서 가까이 모이라고 하면서 긴장된 얼굴로 우리에게 주의를 당부한다. 파리는 소매치기 등이 많은데, 특히 밤 늦은 시간에는 더욱 기승을 부린단다. 그러면서 이 시간에는 지금 흑인들이 역사 주변을 서성인단다. 야간에는 독이 올라서 걍 캐리어 같은 것도 뺏아서 달아난단다. 이 이야기를 들은 일행은 서로를 쳐다보면서 긴장한 얼굴을 내비친다. 그러면서 여자들은 안쪽으로 하고 바깥으로 남자들이 애워싸워 버스까지 200미터 가량 되는데 가자고 한다. 가이드의 코치에 따라 우리는 그렇게 무리를 지어서 역사를 빠져 나와 버스가 있다는 곳으로 가이드를 따라 갔다. 정말로 역사 밖에 나가니 키큰 흑인들이 껄렁대고 있었다. 그리고 우리 일행을 툭툭 치고 지나가는 모습이 보였다. 가이드는 눈빛도 마주치지 말고, 반응도 보이지 마라고 했다. 그래서 우리는 땅을 보고 오로지 걷고 걸어서 대기하고 있던 버스로 갔다. 먼저 여자들은 먼저 버스에 오르게 했다. 캐리어를 버스 아래 짐칸에 다 실을때까지 남자들은 같이 남아 있었다. 이렇게 무사히 200미터의 길고긴 여정은 무사히 끝이 났다.
기차역에서 우리 호텔까지는 1시간 남짓 간단다. 가면서 가이드는 파리에 대해 잠깐 소개했다. 그러면서 프랑스는 가장 개방적이고 인종에 대해 호의적이고, 난민도 받아들이는데 테러가 일어난 것을 아쉬워 한다. 특히 흑인들이 그렇게 기승을 부리는 것은 이해하지 못한다고 한다. 내가 생각하기에는 그들이 취업을 못해서 그런게 아닌가 한다. 정상적인 소득을 벌을 수 있는 일자리가 있다면 왜 그런 부정적이고 불법적인 일을 골라서 하겠는가?
대영박물관을 관람하고 다음 여정은 프랑스로 건너갔다. 예전에는 비행기나 배로 건너갔지만 지금은 기차로 간다. 영국과 프랑스를 잇는 기차 바로 유로스타를 타고간다. 도버해협은 영국과 프랑스 사이에 있는 해협이다. 넓이는 32키로나 된다. 도버라는 이름은 켈트어로 수로라는 뜻에서 나왔단다. 프랑스에서는 칼레 해협이라고 한다. 이 해협을 사이에 두고 영국의 도버와 프랑스의 칼레가 마주보고 있다. 이는 영국과 유럽을 연결하는 최단 거리의 항로이다. 지금은 해저 터널을 뚫어 철길로 연결했다. 유로스타는 유럽을 대표하는 고속열차이다. 1994년에 5월에 준공되었고, 11월에 첫 운행되었다. 2011년 부터 영국, 프랑스, 벨기에 3개국 단일 합작회사를 설립하여 운영한다. 영국 런던 세인트 판크라스 역에서 프랑스 파리 북역, 벨기에 브뤼셀 남역 및 네덜란드 암스테르담 중앙역 구간을 운행한다. 향후에는 독일 프랑크푸르트, 쾰른, 프랑스 리영, 스위스 제네바 등으로 확대할 예정이란다. 런던에서 파리까지는 1시간 간격으로 운행한다. 브뤼셀까지는 1시간 30분 간격으로 운행한다.
대영박물관에서 런던의 세인트 판크라스역으로 갔다. 가는길에 많이 막혔다. 그도 그럴것이 런던이 원래 교통체증이 심한데다 오후 시간이니 당연하다. 역사는 고풍스럽고 웅장하게 떡 버티고 서서 우리를 맞이했다. 우리나라의 기차역과는 사뭇다른 광경에 적잖은 위압감을 느꼈다. 친절한 가이드의 설명을 듣고 기차를 탈 준비를 했다. 국제적인 역사인 만큼 오가는 사람들도 그냥 얼굴만 봐도 다양한 나라의 사람들임을 알 수 있었다. 그러니 역사는 북적대고 활기가 넘쳤다.
기차표를 받아들고 기차를 타기 위한 수속을 했다. 꼬리에 꼬리를 잇는 줄을 따라 여권과 승차권을 확인하고 통과했다. 아직도 1시간 이상이나 시간이 남은 상황이라, 미리 저녁으로 받아든 김밥과 물을 먹기로 했다. 간신이 우리 일행들과 같이 모여서 벤치에 자리를 잡았다. 그리고 일제히 받아든 김밥를 풀어 헤쳤다. 김밥 특유의 향을 풍기면서 우리는 맛있게 김밥을 먹었다. 물론 주변에는 견디기 힘든 고통을 안겨 줄 수 있으리라는 짐작도 했다. 하지만 거기에서는 우리 뿐만 아니라 다른 여행객들도 자기들 취향대로의 식사를 챙겨와서 먹고 있었다. 그러니 그렇게 미안한 감은 없었다. 해외에서 먹는 김밥이라 그런지 더 맛이 있었다.
가이드의 말에 의하면 한국인 관광객 상대로 김밥만 전문으로 하는 영국 현지의 한국인이 하는 김밥이란다. 그래서 그런지 바로 한국, 고향의 맛을 바로 직감할 수 있었다. 하나도 남김없이 맛있게 김밥을 먹고 지나가는 사람도 두리번 거리고, 시간을 사냥하면서 기다렸다. 드디어 우리차례가 되어서 우르르 기차를 타러 갔다. 에스컬레이터를 올라가서 다시 내려가는 길은 머나먼 여정과도 같았다. 이렇게 캐리어를 밀고 끌고 하여 플랫폼에 도착 우리의 기차칸을 확인하였다. 기차에 선명하게 유로스타란 이름표를 달고 있는 모습을 보고 드디어 그 유명한 유로스타를 탄다는 감회가 밀려왔다.
런던에서 파리까지는 2시간 30분동안 논스톱으로 간다. 런던은 한국시간 기준 8시간 느리다. 물론 현재 유럽에 섬머타임이 적용돼서 그렇다. 영국을 제외한 유럽대륙은 한국보다 7시간 늦다고 한다. 여행 캐리어는 실내로 가져가지 않고, 열차와 열차사이의 공간에 앵글식으로 비치된 선반에 캐리어를 차곡차곡 쌓았다. 그리고 중요품과 휴대 가방만 우리와 같이 객실로 들어갔다. 우리 좌석은 역방향이었다. 그리고 마주보는 좌석이었다. 그러니 다리가 매우 불편할 것 같다는 느낌이 들었다. 뭐 할 수 없지 하고 있었다. 그런데 이게 웬일인가? 기차가 출발했는데도 우리 맞은편에는 아무도 앉질 않았다. 이 기차는 논스톱으로 파리까지 가니 더이상 탈 사람은 없다. 그럼 잘됐다. 그래서 아들과 나는 맞은편 순방향으로 자리를 고쳐 앉았다. 그리고 맞은편 자리에는 휴대용 가방을 맡겼다. 또한 다리도 쭈욱 뻗고 갈 수 있었다. 한결 편하고 좋았다.
저녁도 김밥으로 해결하였고, 좌석도 넓게 편하게 갈 수 있으니 최고였다. 그리고 해저터널을 통과한다니 기분이 묘했다. 시간이 야간이라 기차가 출발할때는 주변이 캄캄해 오고 있었다. 아들은 기차가 바다 터널속으로 들어가는 것을 직접 목격하고 싶다고 했다. 또 그 광경을 볼 수 있음에 흥분해 있었다. 하지만 기차에서 바다를 볼 수 있는 것도 아니고, 우리나라 지하철 처럼 그냥 캄캄한 터널 속이라고 얘기했다. 그랬더니 저으기 실망을 하는 눈빛이었다. 그래도 나라와 나라를 해저터널로 잇는 유로스타를 탔다는 흥분은 좀처럼 가라앉지 않는 눈치였다. 왜 안그럴까? 나도 이렇게 흥분되는데 말이다.
기차는 우리의 흥분되고 설레이는 마음을 싣고 도보해협을 건너 파리 북역에 입성했다. 시간을 보니 10시 반이었다. 영국 시간으로는 9시 반이겠지만, 파리가 한시간 빨라서 3시간 반이 흘러간 기분이었다. 캄캄한 밤이니 파리의 공기는 가늠할 수가 없었다. 역대합실에서 내린 사람들이 대부분 사라지자 조용해 진다. 가이드가 잠시 기다리라고 하면서 우리를 델고 갈 버스가 어딨는지 확인하고 오겠다고 한다. 10여분 후에 다시 돌아왔다. 그러면서 가까이 모이라고 하면서 긴장된 얼굴로 우리에게 주의를 당부한다. 파리는 소매치기 등이 많은데, 특히 밤 늦은 시간에는 더욱 기승을 부린단다. 그러면서 이 시간에는 지금 흑인들이 역사 주변을 서성인단다. 야간에는 독이 올라서 걍 캐리어 같은 것도 뺏아서 달아난단다. 이 이야기를 들은 일행은 서로를 쳐다보면서 긴장한 얼굴을 내비친다. 그러면서 여자들은 안쪽으로 하고 바깥으로 남자들이 애워싸워 버스까지 200미터 가량 되는데 가자고 한다. 가이드의 코치에 따라 우리는 그렇게 무리를 지어서 역사를 빠져 나와 버스가 있다는 곳으로 가이드를 따라 갔다. 정말로 역사 밖에 나가니 키큰 흑인들이 껄렁대고 있었다. 그리고 우리 일행을 툭툭 치고 지나가는 모습이 보였다. 가이드는 눈빛도 마주치지 말고, 반응도 보이지 마라고 했다. 그래서 우리는 땅을 보고 오로지 걷고 걸어서 대기하고 있던 버스로 갔다. 먼저 여자들은 먼저 버스에 오르게 했다. 캐리어를 버스 아래 짐칸에 다 실을때까지 남자들은 같이 남아 있었다. 이렇게 무사히 200미터의 길고긴 여정은 무사히 끝이 났다.
기차역에서 우리 호텔까지는 1시간 남짓 간단다. 가면서 가이드는 파리에 대해 잠깐 소개했다. 그러면서 프랑스는 가장 개방적이고 인종에 대해 호의적이고, 난민도 받아들이는데 테러가 일어난 것을 아쉬워 한다. 특히 흑인들이 그렇게 기승을 부리는 것은 이해하지 못한다고 한다. 내가 생각하기에는 그들이 취업을 못해서 그런게 아닌가 한다. 정상적인 소득을 벌을 수 있는 일자리가 있다면 왜 그런 부정적이고 불법적인 일을 골라서 하겠는가?
또한 프랑스는 소매치기 같은 잡범에 대해서는 경찰들도 크게 신경을 안쓴다고 한다. 대신 테러나 인명피해 등에 대해서는 엄격하고 단호하게 대응한단다. 그런 얘기를 들으면서 파리에 대한 이미지를 하나씩 채워나갔다. 호텔에 도착하니 호텔 출입문은 잠겨있었다. 초인종을 누르고 나서야 열어주는 문 안으로 들어갈 수 있었다. 12시 가까이 되었지만 호텔 현관문을 잠그고 있는 것을 보니 치안이 불안한 도시가 아닌가 다시한번 생각한다. 가이드도 유럽에서는 밤에 나들이를 하지 말라고 당부를 한다. 순간 답답하고 조여드는 압박감이 든다. 예술의 도시가 이렇게 치안 문제 때문에 숨박히는 도시라는게 안타까운 생각이 든다. 내일 부터 밝은 파리를 맞이할 것을 생각하며, 내심 기대를 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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